따뜻함과 정이 넘치는 고창군민의 단합된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HOME  >    >  

판소리 성지, 고창의 소리문화

우리민족 민속음악의 대표인 판소리는 근원설화에 바탕을 두거나 중국이 배경이 되어 불리던 전통음악의 한 분야이다. 1880년대 이전까지 판소리의 전승은 창우(倡優)들에 의해서 불려지고 이어져 왔으며 판소리의 부흥은 동리 신재효선생(1812.11.~1884.11.6)이 판소리의사설을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여섯마당으로 개찬윤색하고 판소리의 이론을 정립시켜 판소리를 집대성하였다. 또한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의 판소리 참여를 확대시키고 여창을 등장시켜 판소리사와 국문학사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다.

고창에는 동리 신재효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전통국악의 대중화를 위하여 동리고택을 복원하였고, 동리국악당을 건립하여 판소리 및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을 집중하여왔다. 2001년에는 판소리의 모든 것을 보여줄 고창판소리박물관이 개관하여 판소리 성지로서의 위상에 부합하는 자랑거리이며 볼거리가 되었고 판소리 전수관을 건립하여 국악의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고창은 판소리의 명창인 김수영, 김찬업, 김창록, 진채선, 허금파, 기토산, 김여란, 김소희, 김이수, 김경희등 숱한 명창 대가들을 배출하였다. 그중 진채선은 최초의 여류명창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김소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로 지정되어 활약하였으며 서편제 춘향가의 예능보유자였다. 광복후 여성국악 중흥에 절대적 기여를 하였으며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하여 후학양성에도 큰 몫을 하였다. 1995년 별세하여 고창읍화산리에 안치되었다. 동리국악당은 동리선생의 유업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되어 매년판소리 다섯바탕 발표회, 전국 어린이 판소리 경연대회, 동리대상 시상 및 축하공연, 상설국악교실등을 운영하여 국악의 보급과 판소리의 중흥을 도모하고 있다. 동리고택은 신재효선생이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수많은 명창 대가들이 배출된 산실로서 1850년에 건립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옛건물로서 동리선생의 인간적 풍모를 느낄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판소리박물관은 2001년에 개관하였다. 판소리의 발달과정과 변천사를 한눈에 볼수 있고, 일본과 중국의 민족극과의 비교, 구전심수 체험마당, 고창의 판소리, 판소리 여섯바탕 자료실등이 갖춰져 있으며 동리선생의 유품과 판소리관련 자료가 풍부하게 전시되어있다.

판소리 창시자 동리 신재효 선생

동리 신재효 선생(1812~1884)은 조선후기의 판소리 이론가이자 후원자이다. 본관은 평산, 자는 백원, 호는 동리로 고창출생이다. 그때 당시 이방을 거쳐 호장에 오른자로 전문적인 판소리 광대가 아니면서 동리 신재효만큼 19세기의 판소리 창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넉넉한 재산을 이용하여 판소리 광대를 모아 생활을 돌봐주면서 판소리를 가르쳤으며 집단적 교육실시와 판소리공부 후원, 판소리꾼에 대한 글자교육 · 음해석 · 판소리의 장단 재구성, 판소리가사 개작, 판소리 이념추구 등에 전념하였으며,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판소리 여섯마당을 완성하여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동양의 셰익스피어로 일컬어 질 만큼 크나큰 업적을 남겼으며 고창읍성 입구에 고택이 남아 있다. 당대 명창으로 경회루 낙성식 때 축창을 한 심원출신 명창인 진채선도 동리의 수하생이자 우리고장 출신이다.

판소리 최초 여류명창 진채선

조선 후기 철종 · 고종 때의 음악인이며 여성 판소리 명창으로 고창군 심원면에서 태어났다. 신재효 문하에 있었는데 김세종에게서 판소리를 배워 최초의 여성 판소리 명창이 되었다. 신재효가 경회루 낙성식에 파견하였는데 김세종이 인도하였다 한다. 남복(男服)으로 경회루 낙성식에 출연하여 만장의 갈채를 받았고, 대원군의 사랑을 받았다. 대원군이 정계에서 물러나자 고향에 내려와 살았다는 설이 있다. 진채선이 성공하자 그를 이어 허금파 · 강소춘 등 여성 판소리 명창이 나와 오늘날에는 남성 명창보다 여성 명창이 더욱 많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국창 김소희

생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였으며 판소리중 춘향가, 서편제의 예능보유자이기도 하다. 1917년 흥덕면 사포리에서 천부적 예술가로 태어난 김소희는 13세 때 남원 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으며, 15세때 당시 명창인 송만갑, 정정열, 박동실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송만갑에게서는 심청가와 흥보가를, 정정열에게서는 춘향가와 수궁가를, 김종기 · 강태홍에게서는 가야금산조와 거문고, 양금을 배웠고, 정성린에게서는 고전무용, 김효필에게서는 서예를 익히는 등 총명함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1937년 상경하여 창극단에 입단한 그녀는 선배인 박목수, 이화중과 함께 자웅을 겨뤘으며 정정열, 임방위, 이화산과 춘향가 전편의 레코드 취입, 한국민속예술학원 설립 및 원장역임, 1960년 구미각국 순회 민속예술국제공연, 특히 미국 카네기홀 판소리공연과 28개주 대학초청공연, 뮌헨올림픽 민속예술공연 등 1995. 4. 17일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국악발전과 판소리 중흥에 정진하였다. 그 외 장끼는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이다.

동리국악당

계통 없이 멋대로 불러 오던 광대소리의 가사를 정리하여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적벽가 등 여섯 마당으로 체계를 세우고 판소리사설문학을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공적을 기념하고 국악계승과 발전을 위해 고창읍성 입구에 1988년에 건립하였다. 동리국악연수생 양성, 국악공연과 매년 판소리에 일생을 바치고 기여한 공이 큰 사람에게 공로학술상, 판소리, 고수 등 3개 분야에「동리대상」을 수여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판소리박물관

고창판소리박물관은 동양의 셰익스피어로 일컬어지고, 판소리 이론가이자 개작자와 후원자였던 동리 신재효 및 고창출신 국창인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전통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 옆에(구 고택의 일부) 건립되었다. 지난 2001년 개관한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 유무형의 자료를 수집 · 보존, 조사, 연구, 전시를 위해 세워졌으며 전시실, 연구실, 체험방, 서예, 미술품 전시장 등 지하 1층, 지상 2층 368평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판소리박물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