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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유적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인돌의 고장
유네스코등재 세계유산

고인돌이란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거석문화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로 부르고,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라하며, 기타 지역에서는 영어로 돌맨(DOLMEN)이나 거석으로 부른다. 고인돌과 지석묘가 같은 의미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지석묘라는 용어는 그 한자의 뜻에서 추론되는 바와 같이 고임돌이 있는 무덤이라는 의미이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혹은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류가 거석을 이용하여 구조물을 남기게 된 것은 구조물을 축조하기 위한 재료로서 거석을 이용하였다는 점 외에도 거석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다는 의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즉 거석에는 정령이 있으며 이 같은 정령에 의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인식하에 거석을 숭배하는 의식이 바탕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거석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의식, 또는 거석을 숭배하는 것을 만물숭배신앙(Animism)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선돌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요소이며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그 당시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인 측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인돌의 의미

우리 선조들은 거석에 정령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정령을 숭배하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고인돌이 나타나는 모습은 한 구간에 수 십 기가 무리지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혈연으로 이어지는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혈연으로 형성된 집단은 조상숭배를 중시하게 되었고 이러한 조상 숭배는 생명력과 불멸의 의미가 있는 고인돌을 통해 실현되었다. 한반도 전체의 고인돌의 숫자는 약 30,000 여개가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바둑판식•개석식 고인돌이 탁자식 고인돌보다 많다.
고인돌이란 말은 순 우리말이며 그 말은 바둑판식 고인돌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고인돌이란 말은 “굄돌을 가지고 있는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고인돌과 일반 돌을 일차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날에는 고인돌의 기능을 보다 다양하게 보고 있다. 고인돌은 대부분 혈연집단의 무덤이지만, 혈연집단의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보고 있다.

고인돌의 입지환경

고인돌이 분포된 지역을 보면 대체로 강가의 평지나 구릉, 산기슭, 고갯마루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무거운 돌을 운반하기 용이하거나 주변에서 쉽게 돌을 구할 수 있는 지역에서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창군은 고창읍에서 고수 · 성송 · 대산면으로 이어지는 동부산간지대와 고창읍에서 아산 · 부안 · 해리 · 심원면으로 이어지는 북부산간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대체적으로 저평한 구릉지대를 이룬다. 고인돌은 동부산간지대와 북부산간지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분포된 양상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하천을 낀 산간이나 구릉에서 생활하였으며, 점차 내륙으로 이동하며 생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의 가치

고인돌은 거석문화(Megalithic Culture)의 한요소로 파악되는데 거석문화란 거석을 이용한 구조물을 가진 문화를 의미하며 크게 보았을 때 이집트나 아메리카 대륙의 피라미드(Pyramid), 오베리스크(Obelisk), 중동지방의 각종 석조물, 영국의 Stone Henge, 프랑스 Cargnac의 열석(列石)등이 모두 이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이외에도 Easter섬의 Moai, Malta의 신전 등이 거석문화의 잔재로 인식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인돌외에 선돌(Menhir)이 거석문화의 하나로 존재하고 있다. 고인돌은 함경북도 지방을 제외한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일본 북구주와 화중지방에서 산동반도에 이르는 중국 해안지방과 요동반도 분포하고 있다.
보다 넓게는 북유럽과 서유럽, 지중해 연안지방을 거쳐 중동지방과 북아프리카, 영국, 스위스 등에도 분포되어 있으며 아시아에는 인도 남부, 자바, 인도네시아, 필리핀, 오키나와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고인돌 분포지역 중 가장 밀집되어 분포하는 곳은 우리나라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인돌은 드물게는 산의 높은 위치에 자리하기도 하나 주로 해안이나 강을 따라 그 옆 또는 약간 높은 구릉위에 놓여 있다. 고인돌이 가장 밀집하여 분포되어 있는 전라도지방의 경우 대체로 해안을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해안가에 자리하는 경우도 많으나 그 보다는 해안에서 내륙으로 들어온 지역의 하천 등을 따라 분포한다. 전북지방의 경우 서부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고창, 부안, 등에 비교적 많은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동부 산간지역인 남원, 정읍, 장수, 무주 등지에도 고인돌이 분포한다. 이처럼 도내 거의 전지역에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나 분포의 중심은 고창군이다.

지붕없는 박물관

여행을 다니면서 배우게 되는 것 중 하나는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평범해 보이는 나무 한 그루,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까지 값지게 여기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고창 들녘에서 엄청난 크기의 돌을 본 적이 있다. 들판 한가운데 저게 무얼까.. 의아해 하는 사이, 지나던 마을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농지 만들고, 도로 내던 시절에는 그냥 귀찮은 돌덩이였던 것들이 이렇게 세월이 흘러, 위대한 문화재가 되었다고.. 세상 참 좋다고 말이다. 알고 보니 그 커다란 돌덩이들은 청동기의 역사가 담긴 고인돌이었던 것이다. 그 후 고창에 갈 때마다 그분이 떠올랐고, 길을 걸을 때도 어쩐지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고창의 고인돌군. 얼핏 지나치기 쉬운, 그 살아있는 역사의 무덤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보자.
고인돌 사진 고창읍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북방식 고인돌이 있는 도산마을이 있다. 그리고 이 마을을 안고 북쪽으로 향하면 약 1.2km떨어진 곳에 죽림리 매산마을이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고인돌 밀집지역으로 알려진 이 일대에는 북방식인 탁자형 고인돌 3기, 남방식인 바둑판형 250기, 지상 석곽형 45기 등 무려 447기의 고인돌이 다채롭게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의 모양도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해서 고인돌의 변천사는 물론 그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토록 가치가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라.. 뭔가 큰 기대를 가지고 간다면, 어쩌면 조금은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평범해 보이는 논밭 한가운데,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박혀있는 커다란 돌들.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그 풍경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상상력이 아닐까. 선사시대의 부족들이 그들의 족장을 추모하며 그 거대한 돌을 옮겨 세우고 있다고 잠시 상상해보라~ 그 엄숙함과 그 땀방울을. 그렇게 신성한 역사의 현장이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어쩐지 신비롭고 으슥한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크기 또한 1m 미만에서 최대 5.8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다. 변변한 도구도 없었을 시대에 이 커다란 돌을 움직이기 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는 역사의 수수께끼 앞에서 그저 묘한 기분으로 거대한 돌 위에 손을 얹어보니 왠지 모를 미미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오래 머문 햇살의 흔적일까, 이 또한 상상력의 힘일까.. 고인돌 사진 이곳 고인돌군은 약 2500여 년 전부터 500여 년간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의 가족 묘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선산이나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수많은 가족의 무덤가에 오늘을 사는 살아있는 가족들이 찾아와서 거닐고, 살피고, 머물다 총총히 사라진다, 그렇게 시대를 거슬러 높다란 지붕도, 두터운 유리벽도 없이 만나는 사람들. 공부삼아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역사공부가 또 있을까 싶다. 마냥 신기해 고인돌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상상할 수 있을까, 굳건하게 박힌 이 거대한 돌들이 비바람에 닳아질 때쯤이면.. 아마 우리들도 어디엔가 편안한 영혼의 잠자리를 마련했으리라. 그러한 단상들과 함께 바라보는 고인돌은 더 이상, 그저 커다란 돌덩이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걸어온, 앞으로도 걸어갈, 머나먼 길의 이정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